2011년의 극심했던 불안감은 한 해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끝을 알 수 없는 목적지인 나의 죽음이라는, 때로는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2010년 연말은 하나의 전환점이었고, 2011년은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틀기위해 필요한 도움닫기 같은 해였다. 십년만에 다시 수능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내 인생 최대의 불안함. 누구에게나 미래가 투명할 수는 없겠지만, 알 수 없는 미래가 나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고3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붙여주셨던 별명인 '만만디'는 이제 나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일까? 불면증. 그러나 영어점수 하나 없는 나는 더 이상의 구직활동은 없을 것이라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하자.
이것이 방향의 선회였다. 이어진 수능공부, 방황, 수능공부, 스트레스, 수능공부, 불안감, 그리고 2012년 1월 31일. 다행히도 나는 목표했던 곳에 정확히 안착했다. 이제 한시름 덜었다. 입학 전, 그간 원치않던 맘고생을 한 나에게 작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여행이었다. 쉬어가는 여행, 아무것도 하지 않기, 혼자 가기. 해외로 갈 주머니 사정은 되지 않고, 아직 밟지 못한 우리나라의 땅이 아직 많기에 당연히도 국내여행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그러나 어디로 간다? 선택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다. 커다란 지도를 펼쳐두고 고심을 하다 지리산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섬진강. 김용택 시인이 생각나면서 그 주변을 살피다가 하동이 얻어걸렸다. 하동이다. 도시고양이 생존연구소라는 게스트하우스가 매력적인 그 곳.
서설이 길었다. 나는 이제 하동으로 간다. 꼭 하동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없지만, 1박에 15000원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이라면 가볼법도 하지 않은가. 게다가 인도여행에서 해보지 못한 도미토리(일명 돔)에 묵기. 누구와 하룻밤을 지내게 될지 모르는 예측불가능의 설렘 같은 것 말이다. 삶의 불안정은 영혼을 잠식하겠지만, 그리고 이런 내가 지랄맞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탈은 예측하기 어려워야 제맛이다. 그리고 '도시고양이 생존연구소'라는 이름도 나를 이곳으로 끌어당겼다. 도시에서 살고있는 앙칼진 고양이들이 생존을 위해, 숨을 쉬게 하기 위한 연구소라는 의미가 생각할수록 마음에 닿는 것이었다. 이젠 진짜 하동으로 가는 것이다. 쉬러.
첫째날 2012.2.21 화
2월 20일 따뜻한 남쪽으로 며칠간 머물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을 챙겨 집을 나선다. 최대한 간소하게 꾸린 짐. 옷가지가 들어간 가방, 시집 한 권, 애초에 목표했던 여행기를 마무리 짓기위해 들고간 인도여행노트, 일기장, 생수병이 전부였다. 지난 인도여행 이후로 나의 여행실력도 한단계 상승했으리라 생각하며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가는 곳, 그러니까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동네가 눈에 익을리 없는 그 곳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감이 지도위 기상청 레이더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도착하니 어두워졌고 버스 2-5대정도가 정차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하동터미널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다. 쥔댁에 전화를 걸고 픽업서비스를 신청한 후, 나의 첫 하동음식 도전인 다슬기 수제비를 근처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에서 오랜만에 혼자먹는터라 밥맛이 얼떨떨했다. 연구소장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깔깔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첫 밤을 묵을 두명의 도시 암코양이들을 태워주시고는 픽업서비스비도 받지 않으셨다. 설렘으로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본격적으로 인도 여행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여행 전에 이 곳에 가면 노트북을 빌려주신다는 글을 읽고 '옳다쿠나' 하며 이곳으로 정했던 건데, 막상 여쭤보니 그런 것 까지는 해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미루고 놀기로 결정. 다락은 돔으로 쓰고, 그 밑에는 카페를 하며 그 옆건물 2동은 가족용으로 묵기 좋은 펜션이었다.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참 많았다. 그리고 손님은 없었다. 책과 함께 조용히 마음껏 놀 수 있는 그 곳에서 나는 책보다가 바깥보고 멍때리기, 다시 책, 멍때리기, 책, 멍..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동네 가까운 식당까지 가는데만도 10여분이 걸리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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