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오는 날
비가 오는 여름 날. 지도안을 주말동안 잘 짜보고자 교과서를 빌리러가야했다. 하지만 연체된 친구의 학생증으로는 빌릴 수가 없었다. 스캔이라도 받으러 가야하나.. 투덜투덜 가는 길에 욱 하는 마음이 들어 버스에서 내린다. 맥도날드 아저씨와 함께 늘 눈길을 붙잡던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역시나 지하매장. 서점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으로 책으로 빼곡하게 장식했다. 마음에 든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일 것이다. (비록 읽지 않더라도) 그리고 반드시 여름에 꼭 가야하는 곳이 있다면, 그것 또한 서점일 터. 여기는 바닥이 카펫이 아니라 눅눅한 느낌도 없고 하얀색으로 더 넓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찾는 책이 없기도 했지만, 뭐 그쯤이야 중고서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넘어간다. 종로점에서도 느꼈지만 구색은 갖추었고, 어린이책은 출판사별로, 성인책은 분류별로 두었다.
2. 대애~~~박
요즘 그닥 땡기지 않는 사회과학 분야를 제끼고 문학 동네만 서성거리다 전아리의 책을 집어든다. '팬이야'를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작가였다. 나도 그를 청소년 작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본격(?) 소설을 쓴 모양이다. 그래소 펼쳐드니, 이게 왠걸!! 사인본이다. 손에 꼬옥 쥐고서 황학동에서 또 다른 보물을 찾기라도 할 기세로 서점을 더욱 열심히 돌아다녔다. 얼굴은 익숙한데, 막상 책날개를 펼치니 읽어본 책이 없는 구효서 작가의 책을 한권 집어들었다. 호기롭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서점에 오면 의기 충만, 집에 돌아오면 티비의 노예로 산지 어언 반달. 말 그대로 대박이다.
3. 행복하세요.
작가의 '비문'사인을 보니 웃음이 났다. 절대로 고쳐질것 같지는 않고, 아마 국립국어원이 관형사의 청유/명령형을 표준어규정으로 인정하는게 더 빠를 것 같은 말-행복하세요-을 보니, 왜 씁쓸함만 나는가 싶다. 서점에서는 집에 오자마자 책을 읽어 제끼고 지도안도 다 짜고 한국사 준비도 다 할 것 같았지만, 정작 내 손엔 티비 리모컨 뿐이다. 행복하세요-라는 말에서 달콤함이 느껴지지 않는 나날은 내가 만들었다. 비록 카페의 브런치를 먹을 가격으로 책을 샀다고 위안삼으며 돌아왔지만, 오는 길에 동네 중고서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가. 서점 주인 분은 요즘 행복하신지. 그분의 행복을 말할 자격도 없는 내가, 대형(?)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가지고 집에 가다가 우습게도 묻고싶었다. 그리고 작가는 본인의 사인본이 중고서점에 있는 걸 아는지, 행복하신지. 그리고 나는 행복한지.
4. 우디 알랜- 미드나잇 인 파리
나에게 기쁨과 환상을 주는 이 영화를 보며 얼마전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나의 황금시대는 어디냐고. 영화처럼 1920년대라고 할까 싶으니 대공황이 생각나고, 더 이전으로 가려니 신분제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그 이후를 생각하니 전쟁, 냉전, 군사정부.. 등등만 생각난다. 얄팍한 역사. 아무래도 87년 이후가 낫겠다 싶어 '지금'이라고 답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동생은 경험주의자(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라고 정리했지만, 나는 행복한지 여전히 의문이 든다.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별을 하고, 퇴사를 하는 등등의 선택을 했는데, 지금 이렇게 방에서 궁상을 떨고 있는 것도 나의 행복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 말이다.
5. 노숙자의 인문학
서점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내가, 지금 이렇게 궁상 떨며 살고 있는 내가 서점에서 호기롭게 책을 보며 다녀야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노숙자에게, 거지에게, (나같은) 사회 하층민에게 인문학이 책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책 두권을 사고 싶으로 돌아온 하루.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한 기분이다. 지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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