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온 지 이틀이 지났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성심당을 지나치기만 했으니 오늘은 마음이 급하다. 어떻게든 딸기시루를 사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은 줄이 길더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일정은 유성호텔-태평소국밥-성심당 롯데점이다.


  유성호텔은 약 100년의 영업기간을 끝으로 문을 닫는 곳이다. 한 동안 유성온천 목욕탕 바가지를 굿즈로 주는 이벤트도 했다고 한다.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여기로 예약했을 텐데, 나중에 알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그래도 숙소가 유성온천에 있어 겉에서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방문해 보기로 했다. 첫날 지하철역을 나와 숙소로 가던 중 꽤 멀리서도 이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풍채가 느껴지는 건물이라 단번에 알아보았다. 체크아웃 후 유성호텔을 가던 길에는 철거 직전의 어느 숙박업소도 있었다. 어제 갔던 오니마 호텔처럼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유성호텔이나 그 건물처럼 문을 닫고 흔적도 사라지는 건물도 있겠지. 그래도 뭐랄까 100년이 잊힌다는 건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아주 잘 관리해서 지금도 잘 작동 중인 시계 같아서 더 그랬다. 1층 곳곳에 폐업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은 투숙객들의 엽서들을 모아 만든 큰 액자가 있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대온천장 방향으로 가보니 지금도 잘 나오고 있는 온천물이 보였다. 무언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또 여전히 존재한다. 구경꾼의 처지라 세세하게 살필 여유도 없이 다음 곳으로 향했다. 

  유성호텔 구경만으로는 아직 배가 꺼질 리 없지만, 오늘은 먹어야 한다. 마지막 날이니까. 아주 이른 점심으로 점찍은 곳은 태평소국밥이다.  아주 저렴한 한우 육사시미, 육회, 그리고 소고기 국밥, 내장탕이 유명한 곳이다. 이른 시각이라 바로 앉아서 주문할 수 있었다. 내장탕은 먹을 자신이 없어 국밥과 사시미를 주문했다. 가수 이적이 그랬는데, 식당 음식의 최고 칭찬은 '집밥 같다', 집밥의 최고 칭찬은 '식당에서 사 먹는 것 같다'라고. 태평소국밥은 엄마가 명절에 해주는 소고기뭇국처럼 고기잡내가 없었다. 화려한 재주 부리지 않고 좋은 재료 서너 가지로 조화롭게 맛을 낸 깔끔한 음식이었다. 칼국수보다도 더 빠르게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성심당으로 향했다. 

  여행의 목표와 끝에 다다른다. 성심당 딸기시루! 첫날 중앙로 본점을 보면서 기함을 하고 둘째 날 DCC점에서 방심을 했기에 오늘의 미션에 앞서 약간 긴장을 했다. 줄 서기는 너무 싫으니까. 평일에 롯데점으로 찾아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야호, 줄이 없다! 신이 나서 들어가 빈자리에 짐부터 부렸다. 스윽 보면서 딸기시루 위치를 파악하고, 3시 케이크(딸기시루 판매시간이 평일은 9시, 3시)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직원분에게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 지금 상시 판매 중이니 결제 줄에 서서 바로 말씀하세요. 3시 케이크를 사고 서대전역 4시 차를 탈 수 있을까 표를 예매하면서도 걱정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 명이라도 더 오기 전에 얼른 줄을 섰다. 못 사면 어쩌지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치 너무 쉽게 딸기시루를 얻었다. 연두색 쇼핑백만 봐도 뿌듯하다.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는 아주 여유롭게 다른 빵들을 담기 시작했다. 야끼소바 빵은 대기표가 동이 나 살 수 없었고, 줄 선 사람들을 못 본 체 갓 나온 주먹밥을 그냥 집을 뻔했고, 롯데점에 초코튀소가 없어도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딸기시루를 샀고, 빵집 안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한 사람당 쟁반 하나만 담자고 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고르고 싶은 빵이 너무 많았다. 상자에 포장된 빵들은 손에 들고 다니며 굶주린 사람들처럼 쟁반에 올릴 빵들을 찾아다녔다.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빵으로 보충하려는 보상심리 같았다. 빵 결제줄이 좀 길었지만, 우리는 오씨칼국수 줄도 견뎌낸 사람들이니까, 딸기시루를 산 사람들이니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직원분이 마들렌 1호를 2호로 찍어 돈을 더 낼 뻔했는데, 영수증을 꼼꼼하게 살피는 짝꿍이 있어 결제줄을 벗어나기 전에 바로잡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긴 영수증은 얼굴 붉히기 전에 서로 한 번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본점이 아닌 다른 지점으로 가서 빵 종류가 적으면 어쩔까 걱정도 했고, 롯데점은 백화점에 있는데 어떻게 영업시간이 아침 8시부터일까 싶었다. 매장은 각 지점이 모두 널찍해 보였고(대전역은 좀 좁아 보였다), 백화점 건물이지만 출입구가 다르기 때문에 8시부터 빵을 사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점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좋아 보인다. 성심당은 끝까지 혜자롭게 향긋한 아메리카노가 4천 원이었고, 성심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월요일 롯백점 선택은 아주 훌륭한 전략이었다. 유성호텔은 문을 닫지만 온천수는 계속 나오듯, 성심당도 칼국수도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싶다. 대전을 노잼이라고 하는데, 맛있으면 유잼이다. 



  2박 3일의 일정에서 2일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루를 완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할 것들을 찾아보다가, 엑스포공원, 과학관, 미술관, 수목원, 38층 전망대 등이 마음에 들었다. 때마침 위치도 서로서로 가까우니 동선이 꼬일 걱정이 없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준비하라며 짝꿍에게 미리 엄포를 놓았다. 

  이번 여행은 날씨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실내 위주로 다녔다. 마침 이응노 미술관에서 탄생 120주년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작품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표를 끊고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작품 '군상'을 보고 앗 이 그림! 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분의 시대별 주요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다니. 서양에 몇 십년 살면서도 붓과 먹이라는 재료를 놓지 않고, 동양화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끊임없이 작품에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50년이 지난 그림이 왜 촌스럽지 않은지  나이가 드는데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내가 만약 대나무를 곧잘 그리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면 문자화 등을 시도하려고 했을까? 전시회장에 가면 화가 등 예술가들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그 마음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입장료 1000원에 이런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갑천을 지나 추억의 엑스포 다리와 한빛탑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아침 배가 덜 꺼진 탓에 한빛탑을 가기로 했다(오늘의 실수 1). 93년 엑스포에서 사람구경하다가 기념품으로 손수건만 여러장 사고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탑 안에는 올라가 볼 엄두조차 못냈던 한빛탑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꿈돌이 꿈순이를 지나 무료일까 아닐까를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내소에 사람이 없었다. 무려 무료다! 엘리베이터에서 탑 안쪽이 보이게 창을 냈는데 마치 닥터 후 세트장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 1층에 있었다. 올라가서 한바퀴 돌고, 내려와 오씨칼국수를 가던 도중 성심당DCC를 보게 된다. 대기줄이 없는 성심당이라니! 어제 그 광경을 본 우리는 저절로 빵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오늘의 실수2). 문앞까지 가서 보니 역시 안에는 빵접시를 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칼국수를 먹고 여기서 저녁먹을 빵을 사자며 쿨하게 나왔다.


  오늘의 칼국수는 오씨칼국수. 동선상 본점은 못가고 도룡점을 갔다. 도착해보니 이미 가게 앞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슷하게 도착한 사람들을 비집고 얼른 번호표를 뽑아들었다. 대기표 105번인데 아직 60번대였다. 칼국수니까 금방 빠진다고 어디서 본 것 같고, 이거 먹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줄때문에 포기하기엔 싫은 마음이 있었다. 비 바람 추위를 피하려고 큰 상가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나니 70번대다. 좋아! 이 정도면 금방 빠지겠어! 싶었는데, 그 뒤로 번호가 빠지지를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우리 차례가 왔다. 2시가 넘었고, 밖은 여전히 비 바람 추위로 칼국수 먹기에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 어제의 후회를 교훈삼아 오늘은 주문한다. 칼국수 1, 물총탕 1, 해물파전 1. 먹다보니 밀가루가 풀리지 않은 물총탕에 밥 말아 먹는 맛은 어떨지 궁금해서 공기밥도 1 추가했다. 90%이상 다 먹고 나온 건 안비밀.

  여전히 물총탕은 조개류의 평양냉면 같은 슴슴하고도 시원한 맛을 내뿜었다. 이 곳에도 면을 쉴새없이 뽑고있는 할머니 제면사가 보이는 제면실 안에 있었다. 면발이 어제보다는 조금 더 두꺼웠지만, 설익거나 밀가루 맛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어디까지나 내 입맛 기준). 춥고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씨의 버프를 받아서 더 맛있게 먹었고, 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 나름의 맛이 좋았다. 아, 이정도 맛을 내지 못하면 대전에서 맛있는 칼국수집이라고 이름을 내밀지 못하겠구나. 줄서는 곳이 아니더라도 에지간하면 칼국수가 맛있다는 평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전라도에 가면 백반집에 반찬이 한바닥 벌여져 있지 않는 식당에는 사람들이 안간다는 것처럼, 대전에서는 이정도는 해야 칼국수를 돈주고 사먹겠구나 싶은, 칼국수의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곳 같았다.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라 불러도 마땅하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성심당으로 다시 향했다. 아까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우리의 성급한 자만이자 욕심이었다. 비록 어제 본점 같은 줄은 아니었지만, 성심당은 성심당인걸. 30미터가 넘는 줄을 지나치며, 오늘도 성심당은 지나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오늘의 실수들을 생각하면 맛집을 앞에두고 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짧은 줄을 보고도 방심할 수 없는 법. 그래도 성심당만을 위해 남겨둔 내일이 있다. 생각만 같아서는 오늘은 2만보, 3만보를 걷고 싶었다. 위에 쓴 것처럼 수목원만 걸어도 만보는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가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다보면 어느새 장딴지가 뻐근해지고 발바닥 아치에서 통증이 느껴질때가 있다. 그 느낌을 기대한 오늘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고, 날씨도 추우니 포기할 건 포기할 수 밖에. 원래 계획은 오후에 과학관을 가고 저녁까지 밖에서 먹고 야경을 39층 카페에서 보는 것이었지만, 과감하게 쳐냈다.

  야경은 포기했지만 공짜 전망은 포기할 수 없다. 한빛탑도 무료, 38,39층 카페를 가기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오노마 호텔도 무료. 우리 집도 아니고 투숙객도 아닌데 좋은 건물에 들어와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기분탓일까. 최근에 지은 40층 건물의 39층에 폴바셋과 이탈리안 식당, 38층에 스타벅스가 있었고, 38층은 아래층이 객실인 점을 감안하여 저녁 몇 시 이후에는 의자와 탁자를 끌지 말라는 간곡한 메시지가 곳곳에 있었다. 시선의 권력이라는 말처럼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한 맛도 있고. 사람들이 전망을 두루  볼 수 있게 건물의 테두리에 모두 좌석을 배치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한바퀴 둘러보았다. 밤에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국립 중앙 과학관은 거대한 놀이터였다. 역시 '국립 중앙'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4글자가 보이면 어디든 그냥 들어가면 된다. 자연사관, 인류관, 과학관(2층 무슨 관은 공사중이라 1층만 갔다.) 처음 들어간 자연사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서 그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월석과 아폴로 호에 붙어 달에 다녀온 빛바랜 태극기가 인상적이었다. 인류관부터는 시간과 체력에 쫓겨 후루룩 보고 나왔다. 팁을 더하자면, 시간을 잘 맞춰가면 어린이 몇 명을 데리고 설명해주시는 분이 계셨고, 과학관 1층은 인천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과학관과 비슷+ 추가 전시 내용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물총(동죽)과 면발의 매력을 깊이 느낀 날, 어쩌다보니 성심당 2번째 장소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지도에 찜은 해놨는데 정말로 다녀올 줄 몰랐다. 성심당은 역시 성심당이고, 대전은 성심당이자 칼국수다. 

 

대전을 2박 3일이나 가?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 

  처음은 오롯이 성심당 딸기시루를 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칼국수의 도시라는 말을 듣고, 나름 강원도 장칼국수(feat.손칼국수)를 수십년 먹어온 나로서 그냥지나칠수가 없었다. 최대한 칼국수집을 우겨넣기 위해 2박 3일로 잡은 일정.
  토요일 대전역에 도착하여 을지로처럼 지하철 2-3개 역을 잇는 거대한 지하상가를 걸어 '바로 그 집'에 도착했다. 대전 사람 왈, 20년 전에는 바로그집과 성심당이 비슷한 인기였다고(?). 지하상가 3개 공간을 터 널찍하게 만든 식당엔 떡볶이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번호표를 뽑으려 했는데, 빈자리에 가서 앉으면 된다고 한다. 탁자마다 주문 및 결제까지 가능한 최첨단 키오스크와 과거가 공존하는 재미있는 시작이었다. 
  아이스크림 맛이 나는 떡볶이집이라니. 감히 상상이나 되는가. 진로집 두부 두루치기를 위해 최소한의 음식만을 주문하자며 떡볶이와 쫄볶이만 시켰다. 한 입 먹고, 무슨 맛이지? 한 입 더 먹고, 음, 이 소스가 뭘까? 자꾸 자꾸 먹게 되는 맛이었다. 쫄볶이는 삶은 면이 들어가서 소스가 좀 묽어졌는지, 떡볶이 소스가 더 진했다. 달고, 아주 무거운 질감의 눅진한 소스. 이래서 아이스크림 느낌이라고 했나보다, 한 입에 이해되는 설명이었다. 선물을 한다며 따로 판매하는 소스도 하나 샀는데, 성분표를 읽어보니 비밀은 식물성 유지였다. 팜유일까? 마가린일까? 갖은 상상을 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정답은 커피에 타는 프림이라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부르고 나니 이제 좀 걸을 힘이 생긴다. 우리는 두부도 정말 좋아해서 두부 두루치기도 기대했는데, 걸쭉한 소스 때문인지 2개만 먹어도 배가 불러 두부집은 지나치기로 했다. 

  일단, 성심당은 주말에 가면 안된다. 점심 이후 가장 붐비는 시간에 대전 중앙로 성심당 본점을 갔기 때문일 수 있다. 건물 앞에 줄을 서고도 부족해서 이웃건물까지도 줄을 서고 있었고, 본점 뿐 아니라 케잌부띠끄 줄도 따로 서고 있었다.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심당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있어서 역시 대전하면 성심당이야 했는데, 이 줄을 보고나니 '내가 아까 지나쳤던 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기다려서 저 빵들을 샀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람들이 달리보였다. 그 분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줄을 설 엄두가 나지 않아 건물 안은 구경도 못하고 겉만 보다가 기가 빨려 근처 카페에 갔다. 그 곳에도 성심당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연두색 케잌 쇼핑백과 베이지색 빵 쇼핑백까지. 그럼 줄을 두 번 선걸까? 

   숙소에 짐을 풀고 쉬다가 저녁에 온천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대전의 첫 칼국수. 물총은 어떤 맛일까? 숙소 근처에 있는 온천칼국수집을 찾았다. 때마침 대전은 너무 추워서 따뜻한 국물이 절로 땡겼다. 날씨 때문에 더 맛있게 먹었을지도. 간판에 있는 두 메뉴를 시켰다. 칼국수와 주꾸미. 하얀 국물의 칼국수에 어울릴만한 메뉴로 매콤한 주꾸미가 적당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칼국수와 물총탕을 먹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 집에서 물총탕을 먹어보지 못했다는. 주꾸미를 2인 이상 시킬 수 있게 해놓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칼국수 1인과 주꾸미 2인분을 시켰는데, 주꾸미 1인분이 가능했다면 우리는 물총탕 1개, 칼국수 1개, 주꾸미 1개를 시켰을 것이다. 칼국수가 주인공인데 주꾸미 2인분 때문에 칼국수를 1그릇 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보통의 바지락 칼국수와는 다르게 국물이 많이 짜지 않고 조개의 감칠맛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시원한, 그러나 바다의 비릿한 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국물 좋고. 면은 또 어떤가 보니, 벽에 큼지막하게 자가제면이라고 써 있었고 면발이 탄탄한 질감이 아주 잘 어우러졌다. 그간 내가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던 우리 동네 손칼국수집이 참 멋쩍어지는 탄력있는 면발이었다. 내가 우동면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면이 참 좋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먹었다. 이래서 세상은 넓고 먹어볼 것은 많은 것 같다. 나름 바닷가에 20년 살았다고 섭 등 다양한 해산물을 접했다고 생각했으나, 물총은 새로운 세계였다. 조개가 어떻게 생긴 구조 때문인지 국물을 양쪽에 뽕 하고 머금고 있었다. 마치 볼 양쪽에 공기를 가득 불어넣은 것처럼 물이 얇은 막 안에 있었다. 동죽이라는 조개라는데, 먹다보니 입에서 물이 찍 나올 때가 있었다. 이래서 물총인가 싶었다. 역시 물총탕을 먹었어야 했어! 

 

 

 

 

 

 

 

 

 

 

 

 

매우 급조된 여행.

 

꼭 부여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목적은 부여가 아니라, 떠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을 타는 룸메의 붕붕 뜬 마음을 타고 처자 셋은 부여로 갔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떠난다. 어디론가 향하는 설렘을 트윗에 띄우고, 부여로 가는 길. 생각보다 길이 좁고 구불구불했다. 가보지 못한 곳은 가는 길마저도 꼭 눈에 넣어버리고 마는 욕심으로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두리번 거리린다. 

공주를 거쳐 도착한 부여는 매우 작은 도시의 느낌이 들었다. 여느 지방 도시가 그렇듯, 침체되었고 또 생기가 없어 쇠락한 느낌도 풍겼다. 그러나 기품이 있는 도시였다. 망한 양반 집안의 딸이 주는 애잔함. 내가 본 부여의 첫 인상이다. 오후에 도착한 우리는 가장 먼저, 시내에서 걸어 볼 수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일정은 오늘 밤 짜기로 한다.  

 

정림사지는 부여 시내에 있었다.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역사가 살아 있는 도심, 오래된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음에 감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거리며 부여 시내 구경도 하다, 수다도 떨다, 걸어걸어 정림사지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정림사지 석탑은 컸다. 매우 컸다. 얼핏 생각나는 불국사의 탑들 보다도 컸다. 하지만 탑의 완전한 균형미는 크기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본 탑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단순한 색과 선으로 이루어져있지만, 곱고 우아한 고급스러운 옷의 느낌이었다. 다보탑과 비교하자면, 다보탑은 섬세하고 화려한 맛이 있다. 하지만 정림사지 석탑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품이 있다. 단순한 석가탑은 소박하지만, 정림사지 석탑은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있다. 백제의 문화재가 세련미로 유명한 이유를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규모 면에서도 불국사의 두 탑보다 더 컸다. 아마 초기 석탑의 모습일지 모른다. 아니면,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사비)에서 절의 규모를 상징하거나 백제 중흥의 열망을 담은 탑이라서 클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도착하여 바로 당도한 탑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그 앞에서 누워 탑 주변의 공기를 마셨다. 다른 곳으로 갈 생각도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시간, 그 공간을 즐겼다. 해가 저물어 갈 즈음에야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인지할 정도였으니까. 주말이었는데도 사람이 없어서 왕이 된 기분으로 한적한 여유를 부렸다. 평상시라면 나는 탑을 적당히 보고나서 정림사지에 있는 박물관을 열심히 둘러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석탑은 자신의 존재감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우리는 그제서야 터미널 근처에서 숙소를 잡는다. 그리고 중심시의 시장을 둘러본다. 새로운 곳에 가서 보는 가장 즐거운 것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동네의 특색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며 탐방을 한다. 맛집은 찾아보지 않았고, 마음에 끌리는 곳으로 간다. 우리가 가장 먼저 고르고 골라 간 곳에서 삼겹살을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고기가 없어서 먹지를 못했다. 왠지 이야기가 있을 법한 허름한 식당이었는데 말이다. 그 다음에 간 곳에서 보통의 밥을 먹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시내식당 같아서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맛집 코스프레'한 식당보다는 나았다.


숙소에서 가벼운 음주와 함께 내일 일정을 짠다. 낙화암과 백마강을 가기로 하는데, 낙화함 가는 길은 부소산성을 오르는 길이다. 작은 도시여서 가능한 알찬 동선이다. 그리고 금동 대향로를 보러 가기로 한다. 과거의 부여는 백제의 부흥을 꿈꾸는 화려한 도시였을지 모르나, 현재의 부여는 어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사람 사는 공간이다. 시장구경, 숙소 주변 어슬렁 거리기를 하다가 내일을 준비하며 잠을 보챈다. 나의 일상도 이 여행처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이길 바라본다. 

일년 반 만의 정리글이라 여행의 감회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화장실 갔다가 뒤 안닦고 나온 느낌이라.. 정리는 어떻게든 해야겠다. 힘내보자. 

 

셋째날 2012.2.23.목

마지막 날, 나는 하동과 구례의 많은 곳을 가고자 했다. 아침일찍 움직여 오후쯤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저녁엔 도착할 수 있게 말이다. 동선은 다음과 같았다.  

최참판댁-쌍계사-하동 터미널.

차가 없는 관계로, 근처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동선으로 짜다보니 이렇게 나온다. 여유가 있었다면 노고단가는 버스라도 한번 타봤을테지만, 잠은 포기할 수 없다. 지리산은 나중에 꼭 가보는걸로!

 

섬진강은 느낌이 좋은 동네이지만, 대중교통은 여느 지방 외곽지역이 그렇듯 열악하다. 하루 몇번 이동하는 시간을 꼭꼭 알아두어야 무리가 없다. 놓치면 대략 낭패니까 말이다. 교통시간의 나비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할 부분이다. 

 

아침에 연구소장님은 일어나지 않으셨다. 숙박비는 먼저 계산했고, 조용이 게스트하우스를 나선다. 안녕! 눈발도 안녕, 소나무도 안녕, 연두도 이젠 안녕이다. 어제 함께 방을 쓴 처자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타러 나갔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행선지가 다르다. 버스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지나가는 차와 정지한 맞은편 버스정류장을 사진에 담으며 놀았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고운 얼굴도 담았다. 사진을 건네주기 위해 연락처를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참기로 했다. 나만 간직하는 여행의 기억으로 하기로. 우리는 다른 버스를 탔다. 이젠 세 밤을 지낸 게스트하우스, 스쳐지나간 사람들, 섬진강 과도 안녕이다.   

 

 

 

 

S본부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을 찾아간다. 개장 시간에 맞춰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버스가 늦게와서 예상시간보단 늦어졌다. 그래도 쌍계사 가는 버스시간은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몸을 재게 움직인다. 버스정류장 앞 뜰을 보니, 소설 토지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너른 뜰, 고된 일이지만 마음은 여유로왔던 소설 첫부분에 나온 등장인물들의 삶을 하동 뜰을 보며 시각적인 이미지로 담아둔다. 논 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까지도. 박경리 선생인 딱 이 곳을 보며 소설을 집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착각이 든다. 세트장 입구까지 올라가는 길은 고요했으나, 그 주변으로 슬슬 가게들이 많다. 등산로 밑에 늘 도토리묵, 파전, 막걸리를 파는 것처럼 여기에도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처음에 살짝 신이 났지만, 이내 그런 감흥은 설탕의 단맛처럼 사라졌다. 세트는 민속촌 마냥 잘 꾸며졌다. 안채와 서희 엄마가 머문 별채에도 눈길을 주고, 참판택 아래 마을 사람들의 집에도 책에 대한 애정을 담아 눈길을 보낸다. 특히 용이네에. 참판댁 대문 앞에 서니 하동 너른 뜰이 탁 트이게 보인다. 고층건물들이 아니라면 이 정도 높이에도 시야는 확보되는데, 우리는 괜히 높게 짓고 또 시야가 트이지 않는다며 더 높게, 더 높게만 짓는다. 

 

 
 
 
 
 
 
 





 

 


 

 

 

 

 

 

 

 

 

 

 

 

 

 

 

 

 

 

<하동 뜰>

 

최참판댁 세트에서 새끼를 일하시는 꼬며 일하시는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꼭 박물관도 들어가보라고. 여느 민속박물관처럼 예전 생활상들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지역에 대한 안내를 하는 곳이었지만 어르신이 추천해주신터라 뻔한 내용 알면서도 들어갔다 온다. 그래도 하동이나 섬진에 대한 지명 이야기도 배우는 유익함이 있었다. 지역 자부심은 언제나 봐도 빛나는 것이라. 박물관의 내용보다는 소개하는 뿌듯한 마음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세트장 아래에 마을이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 신문에서만 보던 '지리산 학교'가 있다. 하동에 있는지는 몰랐는데.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곳이 이 곳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기대하지 않은 보물을 찾은 느낌이다.

 

 이 곳에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여사 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다 동네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매우 능숙하게 내게 말을 거셨다. 그 나이대 분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하실말씀이 있는 모양이다. '저기 앞에 가게들.. 전부 타지 사람들이 해. 관광객들 오니 동네 시끄럽기만 하고, 심어놓은 고추나 따가.' 이 곳에서도 이런 일이 있구나 싶다. 원주민 내쫓는 재개발 정책 마냥, 터전이 변한다는 건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할머니의 불평을 들으며,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 같은 관광객 때문에 이들의 평온한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 이들의 일상에 흔적없이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이왕 남기는 흔적이라면  이들에게 좋은  흔적으로 남길 것인지를 말이다. 최참판댁에서 쌍계사로 가는 버스를 혼자서 기다린다. 여유있게.

 

 

한참을 서성이다 버스를 탄다. 관광객 몇 명, 주민 몇 명이 탄 버스에 올라 쌍계사에서 내렸다. 방향을 잘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주민분이 두리번 거리며 길을 올라가신다. 분명 양 손에 든 짐을 함께 질 길동무를 찾는 눈빛이다. 원래 자발적으로 잘 하지는 않는데, 일상과 다른 여행이니까 이런 것도 나서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모습. 어차피 길을 잘 모르던 터라 아주머니와 함께 길을 걸으며 절의 위치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이분도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하시기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완벽한 에스코트로 마무리했다. 인사를 하며, 즐거운 기억으로 마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쌍계사는 두 개의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여 지은 절이었다. 자세한 연원은 백과사전에 검색하면 다 나올 것 같다. 스님들이 꽤 많은지, 수행을 위한 공간이라고 막은 곳이 꽤 넓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 가람 구조의 절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좌우대칭에서 벗어나있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팻말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절에서 향을 사고 나오는 길에, 때 마침 스님 세 분이 계신다. 배치에 대해 물을까 말까 3분을 고민하다가 스님이 계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이왕 오지랖 떠는거, 제대로 하는 여행으로 만들기로. 물건을 사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괜시리 가게주인분께는 좀 죄송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스님께 여쭤보았다. 이런 질문이 익숙하지는 않은 듯 했지만 이내 말씀해 주신다. 그 건물이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고, 연대 차이도 좀 나서 그런 것이라고. 듣고나니 시원하다. 이번 매우 뿌듯한 여행으로 내가 만들고 있다. 궁금증을 해결하니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것이 신호가 온다. 

 

<귀여운 기왓장 표정>

 

 

<기왓장 꽃잎>

 

아까 모셔다드린 아주머니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미 하동 재첩국은 맛봤고 산음식이 거기서 거기란 생각에 고민은 않기로 한다. 식당에 잠깐 들르신거라고 말씀하셨기에 다시 얼굴을 뵈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직 계신다. 내 얼굴을 보시곤 반갑게 맞아주신다. 으흠, 예상 밖이다. 이런 즐거움. 식당엔 손님도 없다. 저렴한 산채비빔밥을 시키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길동무 아주머니가 살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자매간이고, 자식에게 부칠 반찬을 만드느라 동생 식당에 들르셨다고. 덕분에 혼자 먹는 밥이 전혀 외롭지 않다. 원래 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에다가 본인이 만드신 반찬도 먹어보라며 더 얹어주시고, 감에, 엿에, 사과에, 믹스커피 한잔에 포식했다. 배보다는 마음이 더 부른 밥. 어차피 지금 밖에 나가봐야 더운데서 기다린다고, 버스 시간에 맞춰 함께 나가자는 아주머니 말씀에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하동에 대해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며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혼자 여행을 오면 이런 경우가 많아 더욱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나의 보성 여행은 혼자가는 첫 여행이었는데, 그땐 이런 오지라퍼가 아니어서 매우 고독했다. 이만큼 변한 나를 보며, 십년의 시간이 허투로 흘러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주민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 여행을 가는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다. 

 

 

<부끄러움 많으신 아주머니와 나>

 

우리의 대화는 버스에서도 이어졌다.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라는 자리로 자신의 규정한 아주머니와, 누군가의 딸로 정의한 나는 모녀의 대화, 각자의 가정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취를 하는 나와, 객지생활을 하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일흔이 넘어도 반찬을 보름에 한 번씩 부쳐주시는 그 아주머니의 대화는 결국은 나의 엄마를 나쁜 엄마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 아주머니의 딸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지만, 김치나 장은 언젠가 혼자 담가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나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이 분과의 대화 속에서 섬진강을 경계로 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색도 읽으며, 환상을 깨는 것이 쉽지는 않음을 느꼈다. 어찌보면 구례와도 한 지역, 지역공동체일진대, 왜 삐딱하게 보지 못해서 안달인건지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지역감정이 결국 우리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온 터라 더욱 아쉬웠다. 내가 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면 '감히' 지역감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낯선 이와 그런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기엔 너무 어려워서 고분고분 관광객 코스프레를 했다. 이런 주제는 부모님과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니까.

 

관광객 코스프레. 나의 여행에 대한 로망 중에 한가지는 이것이다. 지역 주민분과 친구가 되고, 그 분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는 것. 일일 가족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실험이다. 꽤 오래 대화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일정을 하루 더 늦추고 신세를 질법도 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지랖이 될 수 있을까? 할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다. 결국 하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내밀한 곳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속으로 앓는 고민은 끊어버리고, 우리는 십리벚꽃길을 지났다. 봄에 매우매우 장관이고 천생연분을 맺어주는 길이라 하셔서, 나중에 님과 꼭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헤어졌다. 

 

 

<녹차, 찻잎 덖을 때 쓰는 새끼줄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

 

서울로 가는 버스 시간, 예약 등을 하도 물어대는 터에 목소리로 안면을 튼 터미널에 가서 표를 사고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지 두리번 거렸다. 야생녹차의 고장에 왔으면, 녹차를 마시고 가야지. 아기자기한 찻집이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있는 다른 가게들처럼 촌스럽지 않은 다른 느낌을 풍긴다. 겨울이라 그런가 역시나 손님이 없는 찻집에서 차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주워 삼킨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차 종류 앞에서 나에게 적당한 차를 주문하고 음미했다. 옅은 연두빛의 빛깔을 입으로 대면 싱그러운 맛과 향이 난다. 눈과 코와 입이 같은 맛을 느낀다. 쓰지 않은 녹차의 맛은 마셔본 사람만이 안다. 따뜻한 유리온실같은 가게 안에서 나는 미리 봄을 맛본다. 찻잎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고운 아주머니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요즘 녹차산업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하신다. 생각해보니 차를 좋아한다는 나도 요즘은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를 즐먹고 있으니, 오죽 어렵겠나 싶다. 처음 본 사람에게 하는 무거운 이야기라. 적당한 온도에 천천히 찻잎을 우리는 시간이 있어야 마실 수 있는 차. 이 분이 차 마실 여유조차도 없게 만드는 현대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셨다면 좀 더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 분은 녹차를 좀 더 쉽게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발효녹차'에 관한 방향으로 틀었다. 덕분에 붉은 빛의 발효차도 맛보았다. 녹차와는 다른 맛, 홍차가 발효차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차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버스시간을 간신히 맞추어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세이프-

 

 

 

혼자서 다녀온 3박 4일의 하동여행은 안전하게 끝났다. 나와 함께 무사히 여행을 마쳐준 복면토끼의 노고를 사진으로 남겼다. 3일간의 진한 방전과 늘어짐, 휴식이 있어 마지막 날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었다. 북적대는 곳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던 나의 쓸쓸한 여행이었고, 내가 쓸쓸했기 때문에 주민분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3월부터 시작하는 나의 새로운 앞날에 대한 긴장감을 털어버린 요긴한 여행이었다. 백석과 눈, 지리산 끝자락, 섬진강으로 기억 될 연두빛 여행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우사 膳友辭-함주시초 4 /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대톱에서 하구 긴 날은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하는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