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반 만의 정리글이라 여행의 감회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화장실 갔다가 뒤 안닦고 나온 느낌이라.. 정리는 어떻게든 해야겠다. 힘내보자.
셋째날 2012.2.23.목
마지막 날, 나는 하동과 구례의 많은 곳을 가고자 했다. 아침일찍 움직여 오후쯤엔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저녁엔 도착할 수 있게 말이다. 동선은 다음과 같았다.
최참판댁-쌍계사-하동 터미널.
차가 없는 관계로, 근처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동선으로 짜다보니 이렇게 나온다. 여유가 있었다면 노고단가는 버스라도 한번 타봤을테지만, 잠은 포기할 수 없다. 지리산은 나중에 꼭 가보는걸로!
섬진강은 느낌이 좋은 동네이지만, 대중교통은 여느 지방 외곽지역이 그렇듯 열악하다. 하루 몇번 이동하는 시간을 꼭꼭 알아두어야 무리가 없다. 놓치면 대략 낭패니까 말이다. 교통시간의 나비효과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할 부분이다.
아침에 연구소장님은 일어나지 않으셨다. 숙박비는 먼저 계산했고, 조용이 게스트하우스를 나선다. 안녕! 눈발도 안녕, 소나무도 안녕, 연두도 이젠 안녕이다. 어제 함께 방을 쓴 처자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타러 나갔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못다한 이야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행선지가 다르다. 버스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지나가는 차와 정지한 맞은편 버스정류장을 사진에 담으며 놀았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고운 얼굴도 담았다. 사진을 건네주기 위해 연락처를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참기로 했다. 나만 간직하는 여행의 기억으로 하기로. 우리는 다른 버스를 탔다. 이젠 세 밤을 지낸 게스트하우스, 스쳐지나간 사람들, 섬진강 과도 안녕이다.
S본부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을 찾아간다. 개장 시간에 맞춰 움직였는데, 생각보다 버스가 늦게와서 예상시간보단 늦어졌다. 그래도 쌍계사 가는 버스시간은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몸을 재게 움직인다. 버스정류장 앞 뜰을 보니, 소설 토지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너른 뜰, 고된 일이지만 마음은 여유로왔던 소설 첫부분에 나온 등장인물들의 삶을 하동 뜰을 보며 시각적인 이미지로 담아둔다. 논 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까지도. 박경리 선생인 딱 이 곳을 보며 소설을 집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착각이 든다. 세트장 입구까지 올라가는 길은 고요했으나, 그 주변으로 슬슬 가게들이 많다. 등산로 밑에 늘 도토리묵, 파전, 막걸리를 파는 것처럼 여기에도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처음에 살짝 신이 났지만, 이내 그런 감흥은 설탕의 단맛처럼 사라졌다. 세트는 민속촌 마냥 잘 꾸며졌다. 안채와 서희 엄마가 머문 별채에도 눈길을 주고, 참판택 아래 마을 사람들의 집에도 책에 대한 애정을 담아 눈길을 보낸다. 특히 용이네에. 참판댁 대문 앞에 서니 하동 너른 뜰이 탁 트이게 보인다. 고층건물들이 아니라면 이 정도 높이에도 시야는 확보되는데, 우리는 괜히 높게 짓고 또 시야가 트이지 않는다며 더 높게, 더 높게만 짓는다.
<하동 뜰>
최참판댁 세트에서 새끼를 일하시는 꼬며 일하시는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꼭 박물관도 들어가보라고. 여느 민속박물관처럼 예전 생활상들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지역에 대한 안내를 하는 곳이었지만 어르신이 추천해주신터라 뻔한 내용 알면서도 들어갔다 온다. 그래도 하동이나 섬진에 대한 지명 이야기도 배우는 유익함이 있었다. 지역 자부심은 언제나 봐도 빛나는 것이라. 박물관의 내용보다는 소개하는 뿌듯한 마음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세트장 아래에 마을이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보니, 신문에서만 보던 '지리산 학교'가 있다. 하동에 있는지는 몰랐는데.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곳이 이 곳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기대하지 않은 보물을 찾은 느낌이다.
이 곳에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여사 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다 동네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는 매우 능숙하게 내게 말을 거셨다. 그 나이대 분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뭔가 하실말씀이 있는 모양이다. '저기 앞에 가게들.. 전부 타지 사람들이 해. 관광객들 오니 동네 시끄럽기만 하고, 심어놓은 고추나 따가.' 이 곳에서도 이런 일이 있구나 싶다. 원주민 내쫓는 재개발 정책 마냥, 터전이 변한다는 건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할머니의 불평을 들으며,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 같은 관광객 때문에 이들의 평온한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 이들의 일상에 흔적없이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이왕 남기는 흔적이라면 이들에게 좋은 흔적으로 남길 것인지를 말이다. 최참판댁에서 쌍계사로 가는 버스를 혼자서 기다린다. 여유있게.
한참을 서성이다 버스를 탄다. 관광객 몇 명, 주민 몇 명이 탄 버스에 올라 쌍계사에서 내렸다. 방향을 잘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주민분이 두리번 거리며 길을 올라가신다. 분명 양 손에 든 짐을 함께 질 길동무를 찾는 눈빛이다. 원래 자발적으로 잘 하지는 않는데, 일상과 다른 여행이니까 이런 것도 나서게 된다. 나도 모를 내 모습. 어차피 길을 잘 모르던 터라 아주머니와 함께 길을 걸으며 절의 위치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이분도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하시기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완벽한 에스코트로 마무리했다. 인사를 하며, 즐거운 기억으로 마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쌍계사는 두 개의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여 지은 절이었다. 자세한 연원은 백과사전에 검색하면 다 나올 것 같다. 스님들이 꽤 많은지, 수행을 위한 공간이라고 막은 곳이 꽤 넓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 가람 구조의 절이었다.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좌우대칭에서 벗어나있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팻말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절에서 향을 사고 나오는 길에, 때 마침 스님 세 분이 계신다. 배치에 대해 물을까 말까 3분을 고민하다가 스님이 계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이왕 오지랖 떠는거, 제대로 하는 여행으로 만들기로. 물건을 사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괜시리 가게주인분께는 좀 죄송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스님께 여쭤보았다. 이런 질문이 익숙하지는 않은 듯 했지만 이내 말씀해 주신다. 그 건물이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고, 연대 차이도 좀 나서 그런 것이라고. 듣고나니 시원하다. 이번 매우 뿌듯한 여행으로 내가 만들고 있다. 궁금증을 해결하니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것이 신호가 온다.
<귀여운 기왓장 표정>
<기왓장 꽃잎>
아까 모셔다드린 아주머니의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미 하동 재첩국은 맛봤고 산음식이 거기서 거기란 생각에 고민은 않기로 한다. 식당에 잠깐 들르신거라고 말씀하셨기에 다시 얼굴을 뵈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직 계신다. 내 얼굴을 보시곤 반갑게 맞아주신다. 으흠, 예상 밖이다. 이런 즐거움. 식당엔 손님도 없다. 저렴한 산채비빔밥을 시키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길동무 아주머니가 살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자매간이고, 자식에게 부칠 반찬을 만드느라 동생 식당에 들르셨다고. 덕분에 혼자 먹는 밥이 전혀 외롭지 않다. 원래 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에다가 본인이 만드신 반찬도 먹어보라며 더 얹어주시고, 감에, 엿에, 사과에, 믹스커피 한잔에 포식했다. 배보다는 마음이 더 부른 밥. 어차피 지금 밖에 나가봐야 더운데서 기다린다고, 버스 시간에 맞춰 함께 나가자는 아주머니 말씀에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하동에 대해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며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혼자 여행을 오면 이런 경우가 많아 더욱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스무살 나의 보성 여행은 혼자가는 첫 여행이었는데, 그땐 이런 오지라퍼가 아니어서 매우 고독했다. 이만큼 변한 나를 보며, 십년의 시간이 허투로 흘러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주민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 여행을 가는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다.
<부끄러움 많으신 아주머니와 나>
우리의 대화는 버스에서도 이어졌다.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라는 자리로 자신의 규정한 아주머니와, 누군가의 딸로 정의한 나는 모녀의 대화, 각자의 가정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취를 하는 나와, 객지생활을 하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일흔이 넘어도 반찬을 보름에 한 번씩 부쳐주시는 그 아주머니의 대화는 결국은 나의 엄마를 나쁜 엄마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 아주머니의 딸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지만, 김치나 장은 언젠가 혼자 담가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나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이 분과의 대화 속에서 섬진강을 경계로 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색도 읽으며, 환상을 깨는 것이 쉽지는 않음을 느꼈다. 어찌보면 구례와도 한 지역, 지역공동체일진대, 왜 삐딱하게 보지 못해서 안달인건지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지역감정이 결국 우리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온 터라 더욱 아쉬웠다. 내가 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면 '감히' 지역감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낯선 이와 그런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기엔 너무 어려워서 고분고분 관광객 코스프레를 했다. 이런 주제는 부모님과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니까.
관광객 코스프레. 나의 여행에 대한 로망 중에 한가지는 이것이다. 지역 주민분과 친구가 되고, 그 분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는 것. 일일 가족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실험이다. 꽤 오래 대화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일정을 하루 더 늦추고 신세를 질법도 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지랖이 될 수 있을까? 할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다. 결국 하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내밀한 곳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속으로 앓는 고민은 끊어버리고, 우리는 십리벚꽃길을 지났다. 봄에 매우매우 장관이고 천생연분을 맺어주는 길이라 하셔서, 나중에 님과 꼭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헤어졌다.
<녹차, 찻잎 덖을 때 쓰는 새끼줄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
서울로 가는 버스 시간, 예약 등을 하도 물어대는 터에 목소리로 안면을 튼 터미널에 가서 표를 사고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지 두리번 거렸다. 야생녹차의 고장에 왔으면, 녹차를 마시고 가야지. 아기자기한 찻집이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있는 다른 가게들처럼 촌스럽지 않은 다른 느낌을 풍긴다. 겨울이라 그런가 역시나 손님이 없는 찻집에서 차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주워 삼킨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차 종류 앞에서 나에게 적당한 차를 주문하고 음미했다. 옅은 연두빛의 빛깔을 입으로 대면 싱그러운 맛과 향이 난다. 눈과 코와 입이 같은 맛을 느낀다. 쓰지 않은 녹차의 맛은 마셔본 사람만이 안다. 따뜻한 유리온실같은 가게 안에서 나는 미리 봄을 맛본다. 찻잎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고운 아주머니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요즘 녹차산업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하신다. 생각해보니 차를 좋아한다는 나도 요즘은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를 즐먹고 있으니, 오죽 어렵겠나 싶다. 처음 본 사람에게 하는 무거운 이야기라. 적당한 온도에 천천히 찻잎을 우리는 시간이 있어야 마실 수 있는 차. 이 분이 차 마실 여유조차도 없게 만드는 현대 사회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셨다면 좀 더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었겠지만, 이 분은 녹차를 좀 더 쉽게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발효녹차'에 관한 방향으로 틀었다. 덕분에 붉은 빛의 발효차도 맛보았다. 녹차와는 다른 맛, 홍차가 발효차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차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버스시간을 간신히 맞추어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세이프-
혼자서 다녀온 3박 4일의 하동여행은 안전하게 끝났다. 나와 함께 무사히 여행을 마쳐준 복면토끼의 노고를 사진으로 남겼다. 3일간의 진한 방전과 늘어짐, 휴식이 있어 마지막 날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었다. 북적대는 곳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던 나의 쓸쓸한 여행이었고, 내가 쓸쓸했기 때문에 주민분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3월부터 시작하는 나의 새로운 앞날에 대한 긴장감을 털어버린 요긴한 여행이었다. 백석과 눈, 지리산 끝자락, 섬진강으로 기억 될 연두빛 여행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선우사 膳友辭-함주시초 4 /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대톱에서 하구 긴 날은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여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하는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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