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뵙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연가 사유에 포함되는 거리도 아닌 친척 할머니의 부고 문자처럼 담담하게 연가를 내고 하루를 보냈다. 강릉으로 가기로 한 오늘 아침도 식사를 잘 챙겨먹었고, 가는 차 안에서도 시시껄렁한 대화들을 나누며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할머니 이름과 한복을 곱게 입은 사진이 전광판에 105호실을 알려주고 있을 때에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곳에는 오전부터 사람이 무척 많았다. 삼남매도 장성하여 각자 어엿한 가정들을 꾸렸고, 손주들까지 열명 가량.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할머니의 시조카내외 열명 남짓이 할머니의 장례식장 곳곳을 상주마냥 나서고 있었다.
할머니 댁에도 늘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계신 낮 시간이 적적하지 않게 부엌에는 라디오가 나지막하게 나왔다. 그곳에만 가면 나는 언제나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 할머니 댁에 있던 귀여운 강아지 인형을 안고 놀던 기억, 아저씨가 기타를 쳐주며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노래를 알려주셔서 같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가 며칠이나 묵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며칠도 언제나처럼 포근하고 인자하게 대해주셨다. 분명 되바라진 어린아이였을 텐데도,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께는 꾸중 한 번 들은적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그곳에 대해 늘 기분이 좋았던 기억만 난다.
내게 이런 기억을 남겨주신 할머니라 그런가, 장례식장에도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만큼 할머니가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머니로, 또 누군가의 할머니로 잘 지내오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목소리 크게 내신 적 없이 늘 조곤조곤 말씀하시며, 인자한 미소를 띠셨다. 세간살이는 늘 정돈되어 있었고, 일이 많은 큰집의 일에도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해오셨던 할머니를 보내는 자리라서 말이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고나서 알게 된 할머니는 흥도 많은 분이었다. 버스 안에서 춤추던 모습도 잊지 못할 것이다.
춤도 잘 추고 흥도 많던 할머니는 어느덧 병실에 누워 아기가 되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로 살아와서 아기역할은 잘 하실까 싶었지만, 이 또한 잘 해내셨다. 할아버지가 틈이 날 때마다 할머니를 보러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할머니가 아기가 되어 할머니의 엄마아빠를 만나서 그간 다 못한 응석도 실컷 부리면서 행복하게 지내시면 좋겠다.
'::그들이 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매미의 여행 (0) | 2020.08.18 |
|---|---|
| Place Re:: 울산 - 희망버스 탑승기 (0) | 2013.07.23 |
| Place Re:: 2010 노동자대회_우리와 그들-그 이분법의 경계선에서 시청. (0) | 2011.08.22 |
| Place Re:: 시청,비정규직 노동자대회_오늘의 취미생활 (0) | 2010.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