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으로 그린 그림-통영항

 

나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수영도 할 줄 모르지만, 바다와 파도가 좋았고, 수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끝모를 그 곳에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쓸쓸한 겨울바다도 좋아한다. 이제는 커피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그 곳의 해변에 카페들이 줄지어 서있다. 혹자는 동전으로 사먹는 자판기 커피가 가장 맛있는 커피라고 말했지만, 나는 창문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고, 커피가 맛이 있어 친구들과 즐겨 찾는다. 이렇게 바다와 깊은 인연이 있는 나지만, 지난 여름 다녀온 통영은 또 다른 느낌의 바다이미지를 나에게 남겼다.



통영. 남해안 귀퉁이에 있는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 미항(美港) 등의 수식어가 많이 붙어다니는 곳이다.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등 걸출한 예인들이 나고 자라 예향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통영에 끌렸던 것은 조선시대 부터 유명했던 12개의 공방이 여전히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된 이후부터이다. 조선시대부터 이름난 명품이었던 통영의 갓, 자개, 부채, 소반 등 12가지 공예품을 지금까지도 만들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으로 접하고, 나는 통영에 가야한다는 의무감 마저도 들었다. 


2박3일의 일정을 잡고 통영시에서 보내준 관광자료집을 참고로 코스를 짜서 다녀왔다. 차라리 걸어서 등산을 하는 것이 나았을 케이블카, 정말 해물이 가득 담겨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먹어치웠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해물뚝배기, 어느 곳에 들어가도 맛있을 진짜 충무김밥&시락국. 옻박물관도 인상적이었다. 막상 계획했던 공방들을 찾아가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미 통영의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

항구.
그리고 녹색과 푸른빛의 바다.
가장 중요한 사람.

*** 주세요.
그건 얼마에요?
거기는 어떻게 가나요?
 등의 기본적인 대화밖에는 해보지 못했으면서도.. 통영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와 비교해보자면.. 내가 보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살기에 바쁜 것 같다. 삶의 여유가 없어보인달까/삶에 허덕이며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반면, 통영의 사람들에게서는 여유가 묻어난다. 지역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사람을 대하는 인간미. 사실, 통영이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도 아니고,  통영시에서만 유별나게 빈부격차가 적어서 사람들이 모두 풍족한 경제생활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에게선 모두 관광해설사 같은 자부심이 묻어났다. 통영항 근처에 있던 거북선 공원 주차 아저씨의 얼굴은 마치 내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지중해에서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어부의 얼굴과도 같았다. 내가 통영에 남다른 감흥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하여 다시금 가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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