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가야하는데 동행을 구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우리는 한량처럼 빠하르간지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렇다. 우리는 며칠째 즐겁지 않은 시작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했다. 코넛플레이스까지 왕복운동을 하고, 한국에서 인도까지 우리와 동행한 불필요한 짐들을 다시 부치고, 1박의 예산 300루피를 포함 일주일에 둘이서 200달러 예산이면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기준 하나 만드는데만 꼬박 며칠이 걸렸던가. 겨울 성수기, 짧고도 짧은 빠하르간지 거리에서 한국인은 1분에 한번 꼴로 만날 수 있다. 인도 여행의 기점 중 하나인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함께 해온 ‘주눅’, ‘소심’, ‘바닥을 파고 있는 자신감’에 여전히 매여있었다. 그렇게 지낸 며칠이 마음에 층을 이뤄 결국 꿈이라는 현실을 이루어 내고 말았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가족과 가까운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 같이 둘러앉아서 모두들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곳에 있던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났고, 아빠가 나를 꾸짖은 직후에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다. 이미 한 소리를 들은 터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를 바라봤다. ‘제발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는 눈빛으로. 하지만 그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 곳에 있는 다른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바깥은 전쟁의 기운을 감지한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을 지나쳐 집안에 숨어들어가 바깥을 살핀다. 동생이 가장 먼저 달려왔고, 그 뒤로 그가 오고 있었다. 눈을 뜬다.
나도 안다. 이건 100% 개꿈이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은 나에 대한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다만 이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일어난 즉시 머리맡의 노트와 펜을 들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깬 동생에게도 꿈 얘기를 쏟아낸다. 어이없다는 반응. 그래, 당연하다. 그러나 그 꿈은 내 여행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 나는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꿈은 이렇게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 눈물은 없었으며, 마음 안 어느 곳에선가 스멀스멀 기운이 난다.
(사족: 우리가 여행초기 델리에서 부친 짐은 두 달의 여행이 끝날 무렵에야 서울에 도착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함피에서 우체국 시스템을 조회해 보니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걸 보고 경악한 나는, 우리가 한국에 도착해도 소포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소포가 배로 가는 걸 택했더니, 화물을 모아서 한꺼번에 부치는 것 같다. )
<<여행팁>>
인도의 길은 참 좁다. 그래서 두렵다. 그러나 그 길을 접하는 순간, 새 세계가 열린다. 인사동 길 만큼이나 골목을 알아야 인도를 아는 것 같다. 길은 어디선가 이어지기 마련이니, 쫄지말고 도전해보자. 최악의 경우로, 내가 벌벌 떨었던 찬드니초크에서는 계속 앞으로만 가다가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아서 다시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러나 괜찮다. 뭐든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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