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과 함께 코넛 플레이스의 잔디밭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 것은 매우 낭만적인 경험이었으나, 사실 델리는 진짜 인도를 찾기 위해 최대한 빨리 떠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기차 자리가 없어, 또 하루를 델리에서 묵는다. 하지만 덕분에 목표했던 동생의 신발도 사고, 델리의 강남인 사우스 익스텐션도 가봤다. 시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경험도 처음, 나에게 인도이름이 생긴 것도 처음이다.

기차에서 새롭게 만난 5명과 우리 셋은 함께 작은 마을 쿠리에서 낙타사파리를 하기로 했다. 황금빛의 요새 도시인 자이살메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넘게 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기차역에 마중 나온 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꿋꿋이 우리끼리 장을 본다. 구워먹을 감자, 알루미늄 호일, 과자, 땅콩엿 등을 사서 쿠리행 버스정류장에 집합. 버스에서 만난 아르준의 숙소에서 묵고 다음날 사파리를 하기로 했다. 그 곳에서 먼저 묵고 있던 사람들과 마당 안 캠프 파이어를 하며 서로의 삶,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40대의 독신 이스라엘 아저씨, 가이드와 단둘이 23일이나 사막에 있었던 일본인 청년, 사랑의 상처를 치유중인 한국인 남성 등이 먼저 그 곳에 묵던 일원이다. 사파리를 함께 할 우리 8명으로 말하자면,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 청년, 그저 여행이 즐거운 쾌활한 대학생, 중국을 거쳐 들어온 용감한 남매, 카레를 못 먹지만 인도가 좋아서 또 오게 된 언니, 이상과 현실의 줄타기 중인 아리따운 세무 공무원, 그리고 우리 자매였다. 겸손하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들으며, 사막 마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사막마을은 조혼이 풍습인 듯 했다. 아르준의 아내는 10대에 결혼을 했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아르준의 실제 나이가 35살이라는 것이다. 급격한 노화, 짧은 평균수명 때문에 조혼이 생겨난 것 같다. 그리고 모래로 설거지를 하며 소똥을 잘 반죽해서 햇빛에 널어 말려 유용하게 쓰는 등, 책 속의 인도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작은 사막 마을에서 순박한 아이들을 보니, 농활에 온 기분도 든다.

오후에 낙타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 사막 어느 곳에 멈춘다. 내가 기대했던 모래만 있는 광활한 사막은 아니라, 조금은 실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도 완벽히 해왔으니,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본다. 몰이꾼이 말해준 선셋 포인트에 가서 사진도 찍고 우리끼리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고, 우리는 불 근처로 나방처럼 모여들엇다. 몰이꾼 대장 가르다르 싱이 야매 낙타사파리 가이드 나에게 묻는다. ‘시스터, 닭을 어떻게 요리해줄까?’ 싱의 제안과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탄두리 반, 바비큐 반으로 낙찰하고, 우리들은 호일에 감자를 싸서 불에 넣기 시작한다.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알고 있는 별자리가 왜 손에 꼽히는가를 원망하고, 동시에 저건 백조자리, 이건 왕관자리 일거야상상하면서 사막의 밤을 몸으로 받아들인다. 지구에서 가장 일교차가 큰 지역인 사막. 낙타 등에 있던 패드를 모래 위에 펴니, 훌륭한 이불이 된다. 이불을 겹겹이 싸도 추운 사막의 밤. ‘별이 진다네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절로 생각나는 곳이다. 이제는 인공위성을 별로 삼아야 하는 서울의 하늘과 달리, 이 곳은 별이 땅으로 쏟아질 것 같다. 이불 속에 들어가 하늘에 박힌 수 많은 별 만큼, 내 앞에 오게 될 수 많은 기회들을 떠올린다. 몸은 춥다고 벌벌 떨고 마음은 이 하늘을, 별들을 눈에 가득 담고 싶어서 잠들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그리고 새벽녘, 추워서 잠이 깼다. 옅은 여명과 깊은 어둠이 공존하는 시간. 해가 뜨는 게 아니라, 별이 지는 시간이다. 누군가를 그리며 이 시간이 될 때까지도 잠들지 못했을 이를 생각하며.

그래서 쿠리는 내게 별이 지는 사막이 되었다.

<<여행팁>>

여행 내내 나를 시스터라고 불러준 이는 몰이꾼 대장 가르다르 싱이 유일했다. 대개 남성들이 경제를 담당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있어, 여행객 상대도 남성이 주로 한다. 그들에게 비친 여성인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길을 지나다 보면, 남성 여행객들은 그들과 프렌드, ‘브라더니 하면서 말도 쉽게 튼다. 나는 그게 정말 부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수줍어서 말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보통은, 대화가 잘 되는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인도는 그것보다 성별을 우선하는 것 같다. , 남성과 일행인 여성 여행객들은 안전하지만 인도와 직접 부딪힐 일이 없게 된다. 인도 여행의 일장일단이다. 여성끼리 가되, 사파리 등 필요한 부분에서 서로 동행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인도남자는 90%가 작업을 걸기 위함인 듯. 반면, 남성에게 말을 거는 인도인은 대부분이 사기 치려는 사람이라는 증언이 있다. 무엇이 더 나을지는 본인에게 맡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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