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시기에 자매의 급작스런 동반 퇴사. 대기업, 철밥통은 아니지만 정규직 자리를. 그것도 아마.. 시덥지 않은 이유로, 명확한 그 무엇도 찾지 못한채. 우리는 그저 뭐든 피하고 싶은 겁쟁이 자매여서 이런 결정을 내린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은 퇴사일이 다가오자 내 마음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를 얻는다는 기쁨은 점차 줄어들었고, '내가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마지막 날은 더더욱.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쇼핑 지름신 영접 등 여행준비를 했지만, 여행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설레지 않았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안은 그만큼 내 영혼을 잠식했으리라.

우리의 이런 멜랑꼴리한 기분은 비행기를 타서도 이어졌다. 이륙 직전, 여행일기장의 첫 장을 열며- 나는 부정적인 글로 시작했다. 긍정적인 내용은 거짓으로 채웠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인도로 가며 시간이 뒤로 3시간 30분 늦춰지는 것을 생각했는데, 이를 시간을 거꾸로 거스르는 내가 연어인 것 같다라고 쓴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는 철저한 자기 기만이며 자기 부정이었다. 내 노트에 낙서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함. 난생처음 해보는 이렇게 긴 여행을 앞두고도 즐겁지 않은, 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말이다.

저녁 아홉 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내려 선불택시를 타고 뉴델리역 앞에 내렸다. 이미 빠하르간지도 어두워지고. 동생의 오래된 기억과 여행책자를 더듬어 함께 택시를 함께 타고 온 동행들과 숙소를 찾는다. 어색함을 뒤로한 채 400루피짜리 방에서 잠을 청한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동생과 함께 한 이불을 덮은 것이.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 새롭게 펼쳐진 내 삶에 대한 긴장감이 뒤섞여, 잠을 청한 지 네 시간 만에 눈을 떴다. ‘내가 원래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해외여행 꽤 할만하다.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 동도 트기 전인데 밖에서는 빗자루로 빠하르간지 큰 길을 쓸어내는 소리가 난다. 어젯밤 어두운 길도 그렇게 더러워 보이던 빠하르간지에서도 아침이면 말끔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가. 즐겁지 않다고 느꼈던 우리의 시작도 날마다 씻어내는 길 마냥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서른의 여행은 구질구질한 현실과 같아서 환상적이지는 않다. 다만 앞으로의 두 달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는 오롯이 나에게 달린 것이다.

<<여행팁>>

뉴델리역에는 여행자 사무소가 있다. 여행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나라라 그런지, 외국인을 위한 기차표 쿼터 등 정책적 배려가 뛰어나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는 인도인들이 있으니, 사무실이 옮겼다는 등으로 순진한 외국인을 속여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사무실에 데려가 니가 가진 돈이 지금 얼마냐? 그 돈이면 며칠 여행 못한다..’ 이런 식으로한단다. 십 년 전 주변사람이 겪은 실화이나, 내가 갔던 작년에도 나에게 접근한 인도인이 있으니 아직 유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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