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Re:: 대전-3. 성심당과 칼국수의 도시
대전이 온 지 이틀이 지났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성심당을 지나치기만 했으니 오늘은 마음이 급하다. 어떻게든 딸기시루를 사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은 줄이 길더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의 일정은 유성호텔-태평소국밥-성심당 롯데점이다.
유성호텔은 약 100년의 영업기간을 끝으로 문을 닫는 곳이다. 한 동안 유성온천 목욕탕 바가지를 굿즈로 주는 이벤트도 했다고 한다.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여기로 예약했을 텐데, 나중에 알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그래도 숙소가 유성온천에 있어 겉에서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방문해 보기로 했다. 첫날 지하철역을 나와 숙소로 가던 중 꽤 멀리서도 이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풍채가 느껴지는 건물이라 단번에 알아보았다. 체크아웃 후 유성호텔을 가던 길에는 철거 직전의 어느 숙박업소도 있었다. 어제 갔던 오니마 호텔처럼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유성호텔이나 그 건물처럼 문을 닫고 흔적도 사라지는 건물도 있겠지. 그래도 뭐랄까 100년이 잊힌다는 건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아주 잘 관리해서 지금도 잘 작동 중인 시계 같아서 더 그랬다. 1층 곳곳에 폐업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은 투숙객들의 엽서들을 모아 만든 큰 액자가 있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대온천장 방향으로 가보니 지금도 잘 나오고 있는 온천물이 보였다. 무언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기억하고 또 여전히 존재한다. 구경꾼의 처지라 세세하게 살필 여유도 없이 다음 곳으로 향했다.
유성호텔 구경만으로는 아직 배가 꺼질 리 없지만, 오늘은 먹어야 한다. 마지막 날이니까. 아주 이른 점심으로 점찍은 곳은 태평소국밥이다. 아주 저렴한 한우 육사시미, 육회, 그리고 소고기 국밥, 내장탕이 유명한 곳이다. 이른 시각이라 바로 앉아서 주문할 수 있었다. 내장탕은 먹을 자신이 없어 국밥과 사시미를 주문했다. 가수 이적이 그랬는데, 식당 음식의 최고 칭찬은 '집밥 같다', 집밥의 최고 칭찬은 '식당에서 사 먹는 것 같다'라고. 태평소국밥은 엄마가 명절에 해주는 소고기뭇국처럼 고기잡내가 없었다. 화려한 재주 부리지 않고 좋은 재료 서너 가지로 조화롭게 맛을 낸 깔끔한 음식이었다. 칼국수보다도 더 빠르게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성심당으로 향했다.
여행의 목표와 끝에 다다른다. 성심당 딸기시루! 첫날 중앙로 본점을 보면서 기함을 하고 둘째 날 DCC점에서 방심을 했기에 오늘의 미션에 앞서 약간 긴장을 했다. 줄 서기는 너무 싫으니까. 평일에 롯데점으로 찾아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야호, 줄이 없다! 신이 나서 들어가 빈자리에 짐부터 부렸다. 스윽 보면서 딸기시루 위치를 파악하고, 3시 케이크(딸기시루 판매시간이 평일은 9시, 3시)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직원분에게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 지금 상시 판매 중이니 결제 줄에 서서 바로 말씀하세요. 3시 케이크를 사고 서대전역 4시 차를 탈 수 있을까 표를 예매하면서도 걱정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 명이라도 더 오기 전에 얼른 줄을 섰다. 못 사면 어쩌지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리만치 너무 쉽게 딸기시루를 얻었다. 연두색 쇼핑백만 봐도 뿌듯하다.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는 아주 여유롭게 다른 빵들을 담기 시작했다. 야끼소바 빵은 대기표가 동이 나 살 수 없었고, 줄 선 사람들을 못 본 체 갓 나온 주먹밥을 그냥 집을 뻔했고, 롯데점에 초코튀소가 없어도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딸기시루를 샀고, 빵집 안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한 사람당 쟁반 하나만 담자고 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고르고 싶은 빵이 너무 많았다. 상자에 포장된 빵들은 손에 들고 다니며 굶주린 사람들처럼 쟁반에 올릴 빵들을 찾아다녔다.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빵으로 보충하려는 보상심리 같았다. 빵 결제줄이 좀 길었지만, 우리는 오씨칼국수 줄도 견뎌낸 사람들이니까, 딸기시루를 산 사람들이니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직원분이 마들렌 1호를 2호로 찍어 돈을 더 낼 뻔했는데, 영수증을 꼼꼼하게 살피는 짝꿍이 있어 결제줄을 벗어나기 전에 바로잡았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긴 영수증은 얼굴 붉히기 전에 서로 한 번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 본점이 아닌 다른 지점으로 가서 빵 종류가 적으면 어쩔까 걱정도 했고, 롯데점은 백화점에 있는데 어떻게 영업시간이 아침 8시부터일까 싶었다. 매장은 각 지점이 모두 널찍해 보였고(대전역은 좀 좁아 보였다), 백화점 건물이지만 출입구가 다르기 때문에 8시부터 빵을 사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점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좋아 보인다. 성심당은 끝까지 혜자롭게 향긋한 아메리카노가 4천 원이었고, 성심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월요일 롯백점 선택은 아주 훌륭한 전략이었다. 유성호텔은 문을 닫지만 온천수는 계속 나오듯, 성심당도 칼국수도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싶다. 대전을 노잼이라고 하는데, 맛있으면 유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