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Re:: Jaisalmer-3. 자이살메르를 떠날 자유
애초에 잡은 두 달이 퍽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우리는 꽤 느릿하게 도시들을 이동했다. 델리에서 쳐진 것만큼, 자이살메르에서도 축축 늘어져있었다. 하는 것 없이 성안의 골목을 돌고, 또 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밥때인지를 확인하고, 수리야와 또 짜이를 마신다. 권태에 권태가 더해가던 그 시간,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나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동생은 스케치를 하러 갔다가 1박 숙박비가 거의 천루피에 달하는 고급호텔의 지배인 아저씨 ‘마누 까까(삼촌)’를 친구로 만들어왔다. 우리네 어르신들이 제도권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세월과 삶의 지혜로 전해주는 교훈들이 금과 같이 귀중한 것처럼, 이 분도 좋은 말씀들을 동생에게 해주셨다.
아저씨와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던지, 자기가 사귄 멋진 친구를 내게도 소개해주고 싶은지, 동생은 내일 또 아저씨를 보러 가자고 나에게 말한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우리는 ‘마누 까까’를 보러 간다. ‘허허허’하는 너털웃음이 멋진 아저씨는 내게도 이런저런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우리는 성 안에서도 경치가 좋은 호텔의 테라스 그늘에 숨어, 태양으로 유명한 라자스탄주(州)의 햇빛을 즐긴다. 어제 동생에게 좋은 말씀을 모두 주셔서인지, 내가 기대했던 정도의 금언을 해주시진 않았다. 그 대신에 나는 ‘마누까까’와 함께 일하는 조카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말에, 우리는 삶과 학문이 일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견해를 주고받았다. 확실히 인도인들은 현실에 대한 체념과 적응이 빠르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의 스승으로 마누까까의 조카를 선정하고, 그에게 삶에서 욕심을 덜어내는 마음을 하나 더 배운다.
그러나 사막에 있으니, 기침이 더해간다. 날마다 짜이와 생강이 들어간 라임차를 끓여 마셔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우리는 또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한다. 정해지지 않은 일정에서 어떤 날이건, 그 곳을 떠날 수 있는 권리. 나는 이제야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랄라는 낙타축제로 우리를 유혹하고, 수리야는 좀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지만, 다른 곳에서의 인도도 기대가 되기에 그들과 쌓아온 정도 이제는 물리친다. 점점 더 남쪽을 향해 갈 예정이다. 우리가 타고 떠날 차편까지도 세심하게 알아봐주던 수리야가 터미널에게 애써 우리를 쳐다보지 않은, 그 서운한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을 스치고, 만나고, 정들고, 다시 떠나보내는 일. 그걸 반복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이별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스산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구정을 이곳에서 보냈다. 명절을 앞두고 인사를 드린다고 전화를 걸었는데, 큰고모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전해들었다. 참 인자한 분이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한 우리를 자책해본다. 그리고 떠나가는 우리를 위해, 수리야는 직접 만든 토마토 에그 커리와 그의 부인이 만든 짜파티를 대접한다. 짜파티를 찢어서 커리에 버무려 먹는 라자스탄식 식사법도 배우고, 비밀스럽게 위스키로 목을 축인다. 머물고 있는 곳을 떠나갈 자유는 언제나 홀가분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일은 서운한 마음과 아쉬움, 무거운 감정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상대적으로 양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즐겁기만한 여행이서는 안됨을 말이다.
<<여행팁>>
인도의 서민들은 난을 잘 먹지 않는다. 북부(뭄바이 이북과 이남을 경계로 구분한다)에서는 ‘짜파티’를 주로 먹고, 남부에서는 ‘빠로타’와 ‘이들리’, ‘밀즈’에 들어가는 쌀을 먹는다. 짜파티를 찢어서 '달Dal 프라이'를 묻혀 먹는다. 그래서 생각보다 손에 많이 묻히지 않는데, 내가 자이살메르에서 본 라자스탄식 식사법은 매력적이었다. 짜파티를 찢어서 ‘달 프라이’를 조물조물 무쳐 먹는다. 묻혀 먹는 것과 달리, ‘달’이 짜파티에 고루 배어 짜파티는 더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음식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느낌이다. 참고로 ‘달’은 인도에서 만드는 국물류의 총칭이라 보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커리’를 ‘달’이라고 보면 무방할 듯 싶다.